어둠을 만나러 가는 길
Journey into Darkness


  <어둠을 만나러 가는 길>은 지하철 문화전당역 3번 출구 앞으로 관객들이 모이는 것부터 시작된다. 관객은 지도를 보며 숲, 산책로, 광장을 탐험하고 예술극장 앞마당을 지나 극장으로 들어간다. 공연은 해가 지고 난 후 시작되지만, 도시 한 가운데 위치한 이 공간은 여전히 밝고 활기가 넘친다. 인공의 빛을 피해 자연의 어둠으로 돌아가는 길, 구 도청에 쌓인 역사적 시간을 되짚어 보는 길, 마음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길. 이 길들 사이에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고민하는 시간이 있다.



 
  <어둠을 만나러 가는 길>은 빛과 사운드를 공간에 어떻게 배치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시적극장’의 신작입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시대에 스트리밍이 아닌 방식으로 관객을 만나는 방법에 무엇이 있을까를 고민하다 앱을 개발해보기로 했습니다. 이번 쇼케이스에서는 웹상에 지도를 올리는 것으로 대체하고 있지만요. 관객이 앱을 다운로드 받아 방문하게 될 공간을 사진과 영상으로 살펴보고, 이야기를 먼저 숙지하고, 마음 내킬 때 날짜에 상관없이 이곳을 방문할 수 있다면 어떨까를 상상해 보았습니다.

  누군가 이곳을 방문하는 때가 지금과 같지는 않을 거예요. 공개된 영상과 지도를 통해 미리 보았던 것과는 다른 환경을 만나게 될 거예요. 사전 정보가 있다 할지라도 아는 장소를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낯선 장소를 탐험하는 것이 될 거예요.

  저희가 처음 이곳에 방문했을 때에는 여름으로 풀벌레 소리가 가득했어요. 지금은 그때만큼 소리가 남아있지는 않아요. 광장의 풍경도 달라졌어요. 시민들이 산책을 즐기는 일상적인 광장의 모습을 공유하고자 했던 처음의 목표와는 달리 특별한 행사가 열리는 광장을 보여드리게 되었네요. <어둠을 만나러 가는 길>에서는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못다한 리서치가 있어 아쉬운 마음이 있지만, 이 길에서 여러분을 만나게 되어 기쁩니다.



PART1. 정원에 있는 것

  길, 길 속의 길, 한 점에서 만나는 곡선과 직선, 소실점, 마른 길, 가벼움이 드는 곳, 따뜻한 공기, 고양이 한 마리, 사람의 온기, 쓸모없는 공간, 차가운 땅의 기운, 빗소리, 젖은 길, 무거움이 드는 곳, 발자국, 한 걸음, 다섯 걸음, 누군가를 기다리는 한 사람, 듬성듬성 뿌리 내린 풀, 갈라진 틈, 2020년 가을, 촘촘하게 서 있는 나무, 풀벌레 소리, 야행성 새소리, 겨울을 몰고 올 바람 소리, 발걸음을 뗄 때마다 올라오는 흙먼지 냄새, 낙엽이 바스러지는 소리, 이름 모를 꽃의 잔향



* 여러 갈래의 길 중에서 직선 길을 택하든, 곡선 길을 택하든, 아니면 일부러 길이 아닌 곳들로만 걸어보든, 길을 잃고 헤매게 되더라도 그 선택은 옳다. 불안함이나 무서움이 엄습할 때에, 다른 누군가의 불빛을 찾아 따라가 보는 길 또한 옳다.





PART2. 걸어서 넘는 것

햇살이 조금 남아있을 때, 도심의 불빛이 희미하게 꼬리를 드리우고 있을 때, 보아야 할 것과 들어야 할 것은 분명한 것 같아요. 내 걸음도 주저함이 없지요. 익숙하지 않은 공간에서도 그래요. 지금 서 있는 곳에서 멀리 보이는 분수대까지, 그 사이사이에 놓인 공간의 깊이도 한눈에 파악할 수 있어요. 다시 빛이 있는 곳으로 돌아갈 수도 있지만, 짙은 어둠이 드리워진 곳으로 천천히 나아가보기로 했어요.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의 경계가 점점 흐려지고 있어요. 하나씩 사라지면서 흐려지기보다 하나씩 덧대어 지면서 경계가 불분명해지고 있어요. 누군가의 과거에 누군가의 현재가 쌓이고, 땅이 품고 있는 시간을 만나, 겹겹의 어둠을 만들어 냅니다. 빛이 있을 때 보던 것과는 다른 풍경을 보게끔 합니다.



* 이 길에서 무엇을 보고, 듣고 있는가? 빛에서 어둠으로 향하는 것은 경계를 없애는 것일까? 촘촘하게 더 쌓아가는 것일까?






PART3. 가볍고 무거운 것

2020년 10월 18일. 광장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산책을 하고, 자전거를 타고, 보드 타는 것을 연습하고, 노래를 부르고, 서로의 안부를 전하는 소리와 웃음으로 가득하다. 나는 2020년 오늘, 여기에 있다. 나는 2010년 오늘에도, 2000년 오늘에도, 1990년 오늘에도, 1980년 오늘에도 여기에 있었다. 오늘 걷던 이 길을 버스를 타고 교복을 입고 지나갔다. 이 길이 드라마 모래시계 세트장일 때에는 거리에 눕혀진 버스 사이를 지나갔다. 시위하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북적거릴 때도 조심조심 몸을 움직여 이곳을 지나갔다. 그때에도 광장에는 서로의 안부를 전하는 웃음이 가득했다. 눈물과 외침이 함께 할 때도 있었다. 2020년 오늘 시작한 나의 걷기는 광장의 어떤 귀퉁이들에서는 잠시 멈춰야만 한다. 이 공간에서 나는 기억 속에 각인된 장면들을 떠올린다. 비선형으로 흐르는 시간 속에서 계속 걷는다.



* 광장의 분수대를 끼고 돌면 80년 5월에도 있었던 시계탑과 245개의 총탄이 박힌 건물이 있다. 다시 길을 걷다 보면 오른쪽에 구 도청 건물이 있다. 90년대에는 이 건물에 전광판 빨간 숫자로 시간을 알리는 커다란 시계가 있었다.






PART4. 어둠이 품은 것


마당을 채우는 풀벌레 소리,

나무에서 떨어지는 소낙비 소리,

한바탕 큰 소리를 내며 지나가는 바람 소리.

아름다운 소리들이

극장의 틈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와 만난다.


캄캄한 극장.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칠흑 같은 어둠이 있다.

등대처럼 점멸하는 빛이 있다.

별처럼 빛나는 빛이 있다.


어둠의 끝을 헤아려본다.

밤새도록 할 일은 다른 빛이 들 때까지

어둠을 들여다보는 것뿐이다.





credit

시적극장 Poetic Studio

컨셉트: 김혜림, 베일리홍, 전강희
미술: 김혜림, 신승렬
음악/사운드: 베일리홍, 박승순
드라마터지: 전강희
그래픽디자인: 캐빈
영상: 이종헌
프로듀서: 김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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